안중근 의사가 활동했던 시대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지금 많은 사람들은 왜 안중근의사에게 주목을 하는 걸까?
Even though it has been more than one hundred years since he died, his story still attracts the attention of many Korean people.
1909년 10월26일 오전, 중국 하얼빈역에서 3발의 총성이 울린다.
On the morning of October 26, 1909, three loud shots rang out at the Harbin Station in China.
바로 우리민족의 자유를 빼앗은 장본인 대일제국의 총수 이토히로부미를 겨냥한 안중근의 방아쇠 소리였다.
It was An Jung-geun who shot Ito Hirobumi, a symbolic figure of Japanese imperialism.
이토히로부미는 러시아의 재무장관이었던 코코프체프와 회담을 위해서 하얼빈역에 도착을 했는데요, 열차에서 내려서 군인들에게 사열을 하는 동안 안중근의사가 저격을 하게 됩니다.
Ito Hirobumi arrived at the Harbin Station for a meeting with Vladimir Kokovtsov, a Russian Finance Minister, and was shot by An Jung-geun while doing an army inspection at the station.
안중근의사는 총 6발을 발사를 하게 되는데 그 중에 3발이 이토히로부미의 오른쪽 옆구리에 맞아서 바로 절명을 하게 됩니다.
An Jung-geun shot six bullets, three of which hit Ito in the chest, killing him immediately.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정의로운 사내였던 안중근은 부친의 개화적인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근대적사고를 하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When he was young, An Jung-geun was a boy with intelligence and righteous faith. His father followed the enlightened ideas of those days, and he influenced An Jung-geun to grow up subscribing to modern philosophy.
그는 부친의 권유로 프랑스인 빌렘신부를 만나 천주교에 입교하게 되었는데, 훗날 우리가 잘 알고있는 안중근의사의 호 '도마'는 그의 천주교식 세레명 '토마스'에서 비롯된 것이다.
On the advice of his father, An Jung-geun met a French priest named Wilhelm and joined the Catholic church. His other name, 'Doma,' comes from his baptismal name, Thomas.
1907년 일본이 정미조약을 맺고 군대를 해산시키고 고종을 퇴위시키자 안중근의사는 연해주로 망명을 해서 의병활동을 시작합니다.
After Japan and Korea concluded a treaty in 1907, Japan disbanded the Korean military and forced King Gojong of the Joseon Dynasty to abdicate the throne. By that time, An Jung-geun exiled himself to the Maritime Province of Siberia, Russia, to begin anti-Japanese activities.
그곳에서 독립을 위해 동의단지회를 결성을 해서 독립의 뜻을 다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1909년 10월26일에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의거를 단행하게 됩니다.
He established an armed resistance group to fight against the Japanese colonial rulers, and finally on October 26, 1909, he successfully assassinated Ito Hirobumi.
안중근의사는 이토히로부미 사살로 중국 여순에 있는 일본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 송치된다.
He was arrested by Russian guards and was sent to a jail in Lushun, China, which was under the control of Japanese authorities.
그는 옥중에서 사사로운 삶을 구걸하기 보단 정의롭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동양평화론'과 '안흥칠역사'를 저술하였다.
In jail, he accepted his impending death and wrote some books, such as "On Peace in East Asia" and "The History of An Heung-chil." (An Heung-chil is his childhood name.)
그리고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과 같은 멋진 말과 서체를 남기기도 하였다.
In addition, he left some calligraphy works. One of the famous phrases he left was, "Unless one reads every day, thorns grow in the mouth."
국제사회의 통념을 무시한 일본의 불법재판으로 안중근의사는 결국 1910년 여순의 감옥에서 쓸쓸한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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